토익알바하면서 직장인 따먹은썰

보통 토익선생이라는게 다른거없고 그냥 아무학원에서 방학때 단기로 가르킬 선생들 필요해서 잠깐하는거임 월150정도받았음 내가 토익900이여서 무튼 선생된느데 지장은 크게없었음 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첫날 첫반에 10명 학생중에서 1명이 여자였음 나머지 전부다 남자 그리고 대부분이 30~40대였는데 이년만 20대였음 얼굴은 카톡프사가 사기일정도로 존나이쁘고 실물은 그저그럼 무튼 얘가 하루는 모르는문제있어서 물어보러왔길래 가르켜주니깐 고맙다면서 카톡으로 또 물어봐도 되냐길래 번호가르켜줌 그러면서 친분쌓이고 친해지다보니 얘가 백화점다니는 경리년인거 알게됨 나 수업끝나는시간쯤에 자기 퇴근한다고 밥한끼하자고함 나는 22살 어린년이 그러니깐 존나땡큐지 내가 25이였으니깐 무튼 그년이랑 밥먹을려고 시내에나왔는데 전부다 불금이라서 그런지 자리가 꽉찬거임 그래서 와 이러다가 술도못먹고 얘도못먹고 죽도밥도 않되겠다 싶어짐 내가 나간이유는 사실 긴가민가였지만 목표는 따먹는거였음 우여골절로 치맥한잔하게됬는데 얘가 맥주만 먹으면 존나 빨리취한다는거임 그래서 잘됬다싶어서 화이트2병시키고 1병씩먹기로하고 병 내려놓을려고하면 내가 마시고 또마시고 이럼ㅋㅋㅋ 그러다가 진짜 1병다마시니깐 뻑이간거임 ㅋㅋㅋㅋㅋ 아싸 이때다싶어서 돈도 얼마안나와서 이년 지갑으로 계산할려니깐 모텔비가 갑자기 떠오른거임 이거 2만4천워나온거 내가 계산하고 이년이랑 바로옆에 모텔로 엎어서 고고씽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년카드로 결제하고 들어가자마자 씻지도않고 보지빰 이년 부끄럽다고 씻고온다고하는데도 계속빨아서 전복만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퐁푹섹스3번하고 새벽4시에 나먼저 집에가고 학원관둠 개꿀알바였음ㅋㅋㅋㅋㅋㅋ그리고 섹파로 지내고싶었는데 섹파는 싫다고해서 꺼지라함 ㅇㅇ

[야설 회원투고] 언제까지나 - 23


그러다가도 둘만 있으면 언니 동생이하는 사이였다. 게다가 이 동네는 김 씨 집성촌인지라 이 씨 라고는 종 현의 집과 의성 아제 집이 유일한 이 씨 집안이었다. 또한 종 현의 집안과 제일 가까운 혈족이었던 탓에 제사나 명절 땐 같이 차례를 지내는 사이기도 했다.정례 언니는 좋겠다. 이런 아들이 있 으 가...미자, 니 도 아들 놓 으 마되지... 쪼매마 기다 리 보마 좋은 일 있을 끼다. 무심코 의성 댁의 말에 대답을 하던 종 현 엄마는... 곧 자신이 한 말이 의성 댁에게 상처를 줄까봐서 얼른 말을 잇는다.의성 댁은 열여덟 때인 64년도에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신랑을 만나 혼인을 올렸다. 그 후, 67년에 딸 미 혜를 낳곤 8년 동안 소식이 없는 상태였다. 조상들 묘를 잘못 쓴 것인지, 종 현의 아버지나 육촌간인 의성 아제나 둘 다 2대독자로 다음 대를 꼭 이어야만 되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 답답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혹시 소박맞는 게 아닌가를 걱정하고 있었다.엄마도 그런 사정을 아는 지라 얼른 말을 돌린 것이었다.뭐... 언니 말마따나 언젠가는 얼 라 안 들어서겠나... 참~ 종 현 이 니 는 혈액형이 우 예대 노?종 현의 엄마가 미안해하자 의성 댁은 얼른 종 현에게로 말을 돌린다. 종 현도 그런 의성 댁의 마음을 읽고 얼른 대답해준다.A형 입니 더~ 제일 흔한 혈액형 이 랍 디 더~잡지에 보이 끼 네 A형은 사교성이 좋다 카디 만 니 가 그런가 보네... 호호호... 의성 댁이 어디서 싸구려 잡지를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말하며 웃길 래 종 현과 엄마도 분위기를 맞춰주기 위해 같이 따라 웃는다.인자, 종 현 이도 왔 으 끼 네, 언니야! 나는 집에 가 보 꾸 마~와? 좀 더 놀고 가지?아이다. 집에 가서 저녁 안치고 빨래도 하고 해야지... 요즘은 그래도 전기도 들어오고, 수도도 들어와 가 집안일이나 낮에 못했던 바깥일도 할 수 있어가 너무 좋데 이!그 렇 제? 나도 전기하고 수도 들어오고서는 꼭 딴 세상에 온기분이더라~ 엄마와 집에 간다던 의성 아지 메가 잠시 더 이야기를 더 하는 사이 종 현은 미꾸라지를 살피기 위해 얼른 텃밭으로 향한다.올해 부화된 미꾸라지 새끼는 종 현의 보살핌 덕이지 거의 대부분이 살아남아 이젠 상당히 자란 상태였다. 이런 속도로 간다면 내년엔 종 현이 미꾸라지를 잡기위해 바 둥 되지 않아도 좋을 듯 했다. 미꾸라지를 살펴보고 돌아온 종 현을 보는 의성 댁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왜 일까??? 내 아 부지 모셔 오 꾸마! 저녁을 지으러 가야된다던 의성 아지 메가 여전히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 여자들 수다에 우리 집 쟁반 숱하게 깨어지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했다. 자전거를 몰아 면소재지에서 술을 드시고 계실 아버지를 모셔 오기위해 힘차게 페달을 밟아 갔다.종 현이 왔나~ 예. 아 부지, 오늘도 여 계시 지 예...그래. 니 가 고생이다. 저 인간도 인자 정신 차 리 야 될 낀 데...어이구... 내가 아들 앞에서 아 부지 욕하고... 나도 아까 너 그 아 부지 캉 술 한 잔 먹 었 디 마 취했나보다... 미안 하 데 이~ 호호호..아버지는 이미 많이 취했는지 선술집 안에 있는 방안에 상을 치우고 큰대자로 뻗어 주무시고 계시는 듯 했다. 경기 댁(선술집 주인)이 덮어주었는지 여름용 이불도 가지런히 몸을 감싸고 있었다.괘 안 심 더~ 아지 메가 아이 마, 누가 우리 아 부지 밥이라도 먹이 겠 심니 꺼. 집에서는 아예 밥도 안 드시고 그 라이 끼 네 혹시나 건강이 더 나빠지실까봐 지가 노심초사 한다 아 입 니 꺼.... 아지 메는 우리 아 부지한테 머라 캐도 전혀 안 서운 합 니 더.. 그래 생각해주마 고맙고... 그라고 아까 점심 때 죽 좀 끓여가 너 그 아 부지 좀 먹였다. 오늘은 그래도 죽이 잘 끓여졌던지 두 그릇이나 먹었다 아이가~~ 안 그래도 니 가 신신당부를 하길 래 요즘은 내가 저 인간 밥은 꼭 먹어야만 술 준 다 꼬 땡 깡 쫌 부 렸 디 마, 처음에는 안 먹는 다 꼬 보채 미 다른 술집에 간 다 꼬 카는 거 목발 빼앗아 놓고 갈 때 가더라도 먹고는 가라고 타박을 줬다... 요즘은 퍼뜩 먹고 그 다음에 술 묵는다. 선술집 주인인 경기 댁은 원래 고향이 한강 이북 경기도 포천 어디라도 들었다. 열여덟인가에 대구로 시집왔다가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해서 신랑이 밖에서 아이를 낳고 들어 왔다. 그러는걸... 자신의 죄라서 참고 살았지만 얼마 후 새파랗게 젊은 그 아이 엄마가 안방까지 차지하더란다. 그것도 또 배가 남산만큼 불러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국 시댁에서도 쫓겨나고, 친정이라고는 6.25 사변 때 미군 폭격에 부모와 어린 동생 남매도 다 죽었다고 한다. 그 재산은 삼촌이 차지했는데, 찾아가니깐 문전박대 하더란다.그래서 부모님 재산이라도 달라고 땡 깡을 부리며 소송까지 불사 하겠다고 하자 삼촌이 얼마간의 돈을 줬다고 했다. 남편이 위자료 조로 준 얼마간의 돈과 합쳐 대구 인근인 이곳에다 터를 잡 았 단다. 아마도 남편이 혹시나 자신을 다시 시댁에 들이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떠난 기차와 남자는 절대 빠꾸를 치지 않는다는 말처럼 멀리서나마 한 번 보려고 찾아 간 남편은 매정하게 쫓아내더란다.그래도 모진 게 정이라고 자신을 쫓아 낸 남편을 멀리서나마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대구에서 남의 집 식모 짓도 했단다. 조그마한 채소가게도 해 봤지만 신통찮아서 결국 예전에 이 곳에 사둔 집에다 선술집을 차렸단다. 밥솥만 운전한 년이 장사는 얼어 죽을 이란 한탄 아닌 한탄을 하는 경기 댁의 말에 그 당시 종 현은 고개만 끄덕였다.자신의 말로는 몇 년간 대구 생활하면서 남편을 멀리서 몇 번을 보긴 했는데 자신은 자꾸만 초라해 지는데... 남편이랑 자신을 쫓아 낸 그 년은 알 콩 달 콩 사는 꼴을 보는 게 더 이상 싫어졌단다. 그래서 이곳에 왔지만 비록 돈은 안 돼도 속은 편하단다. 이곳에 집을 사면서 논도 몇 마지기 사두었기에 양식이나 반찬 걱정 없으니 좋고 손님 없을 땐 논에 나가 일도 한다고 했다. 열여덟에 시집와서 경상도에서만 살다보니 이젠 경기도 말씨보단 경상도 말씨가 더 잘 어울리는 형국이다. 물론 곧 가다 경기도 말씨도 나오긴 하지만..이 정도가 작년 겨울인가에 종 현 이가 아버지를 모시러 왔다가 아버지랑 자작하다... 그만 술에 취해버린 경기 댁이 푸념 삶아 뱉은 전모의 전 내용이다. 종 현의 아버지가 경기 댁에게 누부야... 라고 부르길 래 나이를 물어보니깐 아버지보다 두 살이 많다고 한다. 아마 1930년생인가 보다. 뭐 푸짐한 몸매가 나이를 감춰버려 어찌 보면 아버지보다 어리게도 보이다가 어찌 보면 더 들어 보이기도 한다. 종 현으로 썬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아버지가 면소재지에 있는 서너 곳의 선술집에서 유독 경기 댁의 선술집을 찾는 이유는 아마도 6.25의 상흔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아버지 역시 6.25때 다리에 파편을 맞아 상이군인이 되었고, 경기 댁 역시 부모와 남매 모두를 잃었다.둘 다 같은 상흔을 지녔기에 그래서 편한가 보다. 그러한 사정들을 대충이나마 알기에 아버지가 면소재지에 나오면 이 곳을 자주 찾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밥이라도 꼭 챙겨달라고 술값이외에 얼마간의 돈을 더 쥐어주자 밥 숱 갈 하나 더 놓으면 그만이라며 받지 않았다. 정히 고맙거든 혼자 사는 년이 추어탕 끓여먹기가 뭣하니... 집에서 추어탕 끓이거들랑 한 냄비 가져다 달랜다. 그래서 종 현이 종종 추어탕 이외에도 다른 국이나 찌개도 가져다주곤 하는 처지다. 겨울철엔 하우스에서 나는 채소도 가져다주게 되었다. 그란 데 참 신기 하 네 예. 집에서 주무시면서는 그렇게 코를 고는데 우 째 여서는 아 부지가 코를 안 고시 네 예?호호호... 예전에 남편이 너 그 아 부지처럼 코를 많이 골았었다 아이가~ 그래가 이 곳 저 곳 다니면서 우 짜 마 코를 덜 골게 하는 지 배웠다. 자는 자세 때문일 수도 있고, 목의 자세 때문일 수도 있고... 하여 튼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렇다. 물론 코나 목 안이 기형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야 수술을 해야 되는 기다. 너 그 아 부지야 그런 경우는 아이고, 그냥 자세만 좀 바꿔주마 된다. 좀 귀찮기는 해도 말이다. 호 호 호 호..역시 경기 댁은 수다가 좀 있는 여인네 인가 보다. 종 현이 한 마디를 하면 경기 댁은 수 마디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외로웠나 보다. 이야기 상대가 그리웠나 보다. 그러나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듯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종 현이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도 운명이겠지...나도 다른 애들처럼 고모가 있 었 으 마 했는데 아지 메가 꼭 제 고모 같 심 더... 히히히..그래? 그러 마 내 가 니 고모하마 되지 뭐,,, 호호호... 에이~ 싫 심 더. 다른 애들 고모는 새파랗게 젊은데.. 그냥 큰 엄마 하이소~야가.. 야가.. 아 부지 돌보기 싫어가 날 아주 너 그 아 부지 본처로 만 들어 뿌 네... 그라 마 너 그 엄마가 싫어 할 낀 데... 호호호... 에이~ 우리 엄마가 원래 우리 아 부지 본 마누라로 있는데 다른 마누라 얻 으 마 작 은 엄마지 우 째 큰 엄마가 돼 요? 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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